::: 수은 강항선생 기념사업회 :::
 
작성일 : 09-11-20 16:31
일본은 독도에 추잡한 작업(?) 걸지 말고 우리 땅, 대마도나 돌려 달라!!
 글쓴이 : 강의나라
 
모든 역사는 승자에 의해 정리된다.
그러나 현실이 역사이며 사필귀정인 것이다.2008. 07.19(토) 12:25 강대의정경부장
 
 
일본은 독도에 추잡한 작업(?) 걸지 말고 우리 땅,
대마도나 돌려 달라!!
정치경제부장 강 대 의

모든 역사는 승자에 의해 정리된다.
그러나 현실이 역사이며 사필귀정인 것이다.

檀奇古史(단기고사)를 일부 살펴보면 奇子(기자)의 뜻은 태양의 아들이며 皇孫(황손)이라는 뜻이다. 書經(서경) 論語(논어)에 箕子(기자)는 이름이 胥餘(서여)이며 殷(은)나라의 폭군 紂(주)왕의 伯父(백부)이다.
第6世 馬密(마밀) 奇子(기자): 18년간 재위 [BC 1092년경]
첫 해에 맏아들 牟弗(모불)을 세자로 삼고
高先子(고선자)를 首相(수상)으로 삼고 路日突(노일돌)을 上將(상장)으로 삼았다. 3년에 아우 馬立罕(마립한)을 對馬島(대마도)의 왕으로 삼았다

지금 대마도, 뜨거운 감자되다!!

위치는 전남 진도군 조도면 대마도리에 속한다.
면적은 1.77㎢이고 크기는 해안선 길이 14.5㎞이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하조도와 서거차도의 중간에 위치한다. 1600년대 초기에 경기도 광주에서 양주 허씨 일가가 들어와 살았고, 관매도에 살던 강릉 함씨의 후손이 이곳으로 옮겨와 살면서 자연마을을 형성하였다. 섬의 전체모양이 크나 큰 말 모양으로 되어 있다고 해서 대마도라 하였다고 하며, 조선시대엔 그 곳에 말 목장이 존재하였다고 전한다. 대부분 100m 내외의 구릉지를 이루고 있다. 해안은 돌출한 갑과 깊숙한 만이 연이어져 있고 북쪽과 동쪽 해안을 제외하면 대부분 암석해안으로, 높은 해식애가 발달했으며 1월 평균기온 3℃ 내외, 8월 평균기온 26℃ 내외, 연강수량 943㎜ 정도이다.
우리나라에서 대마도 원정은 좁은 뜻에서는 1419년(세종 1) 6월에 이종무(李從茂)를 삼군도체찰사(三軍都體察使)로 임명하여 정벌한 일을 말하나, 넓은 뜻으로는 이보다 앞서 있었던 고려 창왕(昌王) 때와 조선 태조(太祖) 때의 정벌까지도 포함하기도 한다.
대마도는 원래 토지가 협소하고 척박하여 식량을 외부에서 충당해서 생활하여야 하므로 고려 말부터 우리와는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며 조공(朝貢)의 형식을 취하여 그 대가로 미곡(米穀)을 받아 갔으며, 조정에서도 그들을 회유하기 위하여 대마도를 우대하여 주었다. 그러나 대마도에 기근이 심할 때면 그들은 족보도 없는 해적으로 돌변하여 우리해안을 약탈하므로 그 때마다 조정에서는 군사를 일으켜 이를 정벌하였다.

역사가 대마도를 말하다.

역사에 기록된 첫 번째는 1389년(공양왕 1) 2월에 박위가 병선 100척을 이끌고 대마도를 공격하여 왜선 300척을 불사르고 노 사 태(盧舍殆)를 진멸시켜 고려의 민간인 포로 100여 명을 구해왔다.
두 번째는 96년(태조 5) 12월 문하우정승(門下右政丞) 김 사 형(金士衡)이 오도병마 처치사(五道兵馬處置使)가 되어 대마도를 정벌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며
연이어 세 번째는 1419년(세종 1) 6월에 다시 대마도를 정벌하였으며 1418년(태종 18) 대마도도주(島主) 소 사다시게[宗貞芽]가 죽고 아들 소 사다모리[宗貞盛]가 뒤를 이었는데, 대마도에 흉년이 들어 식량이 부족하게 되자 왜구는 대거 명나라 해안으로 향하던 중, 비인현(庇仁縣:舒川) 도두음곶(都豆音串)과 함께 북쪽인 해주(海州) 해안을 약탈하였다.

이와 같이 조선에서는 왜구의 창궐과 행패가 새 도주 소 사다모리의 선동에 의한 것이라 하여 이종무를 삼군도 제찰사로, 우박(禹博)․이 숙묘(李淑畝)․황의(黃義)를 중군절제사(中軍節制使), 유습(柳濕)을 좌군도(左軍都)절제사, 박 초(朴礎)․박 실(朴實)을 좌군절제사, 이지실(李之實)을 우군도절제사, 김 을지(金乙知)․이 순몽(李順夢)을 우군절제사, 도합 9절제사에게 삼남(三南)의 병선 227척, 병사 1만 7,000을 주고 마산포(馬山浦)를 출발하게 하여 대마도로 진격하였던 것이다.
앞에서 제시한 엄연한 역사와 실록에 근거한 자료와 같이 대마도는 우리나라의 영토인 것인데도 불구하고 일본정부는 1945년 항복문서에서 포츠담선언 그리고 카이로선언의 의무를 수락함으로써 이른바 폭력과 강요에 의하여 약취한 영토를 침략이전의 상태로 환원 할 법적의무를 지고 있으므로 역사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는 독도는 이미 우리나라영토가 분명하고 아울러 이런 여러 가지 정황으로 대마도는 당연히 우리나라의 영토이기에 되돌려 받아야 하며 지금까지 대마도의 모든 권리와 책임에 대한 국가적 배상을 우리는 떳떳이 주장하여야 하며 받아내야 하는 건 마땅히 받아 내야하는 것이다.

일본인들이여!!

역사는 현재진행형이며 문화의 굴레이다.
그래서 거듭 강조하지만 사필귀정인 것이다.
독도를 말하기이전에 대마도나 빨리 돌려 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