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은 강항선생 기념사업회 :::
 
작성일 : 18-03-19 23:25
강철수' 홍유 강항헌창비'아픔을 품다
 글쓴이 : 강의나라
 

강철수(전북타임즈 사장)대표의 이력은 참으로 특이한 부분이 있다. 한 정당의 부대변인직을 맡아 최선을 다해 당의 입으로 역할을 다했으며 현재도 장애인단체의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는 열정으로 쉽게 지치지 않는 체력과 정신을 소유한 그런 사람이다.

또, 그는 수시로 고서적과 그림, 도자기, 목각, 서예작품 등 진귀한 물건들을 수집해 오고 있는 문화와 예술의 전문가이기도 했다.

그런 그가 2008년 10월 16일 전일신문 편집국장으로 근무할 당시 천파일족의 혈연관계를 떠나 일본에 유교를 전파한 수은강항선생에 대한 박정희특파원의 글을 받아 정리한 게 뒤늦게나마 15일 알려져 세간에 화제가 되고 있다.

 
특히 일본 오즈시에 세워진 '홍유강항 헌창비'를 직역을 해 당시 잔잔한 감동을 전하기도 했지만 1990년 3월 연파 김용식선생에 의해 필사된 '홍유강항 헌창비'에 대한 그의 술회는 남달랐다.

일본인들의 아주 잘못된기본  생각은 항상 자기중심적 역사왜곡을 하시라도 멈추지 않고 있다는 것을 이 '홍유강항 헌창비'에서 읽을 수 있다며 그는 강조해 말했다.

'홍유강항 헌창비'에 '~ 자유로운 신분이었습니다'라고 표현했지만 더 정확한 표현은 '포로로서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었습니다'가 맞고 두 번째 가장 중요한 부분은 수은 강항선생이 사서오경을 발문해서(당시 강항선생은 전쟁 포로였기때문에 한 권의 책도 지닐수 없었고 오로지 선생께서 갖고 계신 학식을 터전으로 7세가 더 위인 38세의 세이카가 필답으로 받아 기록한 글) 후지와라 세이카가 일본 번역글 즉 왜훈을 달아 일본유학을 싹트게 했음을 간과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도 놀라운 사실은 그때 당시 수은강항선생이 발문해서 후지와라 세이카가 기록한 '사서오경'이 중국 원본과 비교해 한 글자도 틀리지않고 정확하게 발문한 내용이라는 것이다.